합천 가야산 홍류동 계곡 명암 정식 선조의 각자를 찾아서..
※ 明庵 鄭栻선조 : 조선후기 義巖事跡碑(1722년)를 撰한 진주선비
덕산 무이정사 유계 정 태 종
▶ 유람 경과 및 결과
부산시내 모 산악회 트레킹 일정이 있어 참석하였다. 트레킹 코스 중 합천 가야산 소리길과 홍류동 계곡이 있었기 때문이다. 홍유동 계곡이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지금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관리사무소에도 문의했지만 출입이 불가하다는 입장만 전달 받았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였다.
▲ 바위에 새겨진 刻字들
계곡 아래 쪽으로 바위에 새긴 글씨를 내려다 본다. 바위마다 사람들의 이름이 즐비하다. 바위에 글씨를 새기는 행위는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가 분명하다. 그러나 드물게는 이곳에 누가 왔다 갔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다시 한번 鄭栻선조(1683~1746)의 문집 <明庵集>에 수록된 '伽倻山錄(1727년)'을 보기로 하자.
仙山一別勝賞. 難再. 一步一顧. 一詠一嘆. 有海環僧. 乃刻僧也. 刻余堂號姓各於紅流石面.將不免?鼠之踐. 苔蘇之侵. 終歸泯沒. 則其與曾不題名者. 抑何間耶
『신령스러운 산의 아름다운 경치는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므로 한 걸음 걷고 한 번 돌아보고 한 번 읊조리고 한 번 탄식하였다. 해환이란 승려가 있었는데, 바로 새기는 일을 주로 하는 승려(刻僧)이다. 나의 당호와 성명을 홍류동의 바위 면에 새기었다.장차 다람쥐가 밟고 다니며 이끼가 침범하여 마침내 없어질 것이니, 이름을 쓰지 않은 사람과 더불어 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새기는 일을 주로 하는 승려(刻僧)"도 있었다고 하는 걸 보면 바위에 글씨를 새기는 행위가 얼마나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명암공 鄭栻 선조께서도 여기에 글을 남겼을 것으로 보인다. "이름을 쓰지 않은 사람과 더불어 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라고 기술하고 있다. 파고들수록 신비롭고 경의로운 것이 선비들의 세계가 아닌가 싶다.
▲ 崔致遠의 詩가 적혀 있었다는 孤雲題詩石處
계곡 안으로 내려가면 최치원의 시가 적혀 있었다는 곳에 세운'伽倻山虹流洞孤雲題詩石處'를 알리는 비가 서 있다. 1996년에 세운 돌비다. 글은 이지관 스님이 쓰고 중산 최종상의 글씨를 쓴 것이다. 고운 최치원이 入山시에 썼다는 시는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이라는 시로 알려졌다.
狂奔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키 어려워라.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늘 시비(是非)하는 소리 귀에 들릴세라
故敎流水盡籠山(고교류수진롱산)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버렸다네
* 고운 최치원 농산정과 둔세지비
* 고운 최치원 제시석처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