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 정감(鄭鑑) 삼옥공

호조정랑 정공(戶曹正郞 鄭公) 묘표음기(墓表陰記)
공의 성은 정(鄭)이요 이름은 감(鑑)이요 호는 삼옥(三玉)이다.
정도공(貞度公)의 6대손이며 영양위(寧陽尉)의 현손이다.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휘 미수(眉壽)는 공의 증조부이며 해령군 휘 원희(元禧)는 바로 공의 아버님이시다. 어머님 상주 김씨(金氏)는 판서 광준(光準)의 따님이시다.   
공은 명종 18년(1563)에 나서 선조 28년(1595)에 진사에 급제하여 통훈대부 호조정랑(戶曹正郞)으로 있다가 인동부사(仁同府事)로 나가 있었다. 인조 8년(1630)에 세상을 마치니 그 때 나이 68세였다.
무덤은 수원 오타면 성두리 옥녀봉 아래 서북향(巽坐)터에 있는데 빗돌이 세워져 있다.
두 아들과 한 딸을 두었는데 맏아들 세준(世俊)은 벼슬이 적순부위(迪順副尉)로 부인 경주이씨(慶州李氏)는 부사(府使) 승(昇)의 따님이었고, 둘째 후준(後俊)은 벼슬이 진잠현감(鎭岑懸監)으로 함열 남궁씨(咸悅南宮氏)와 파평 윤씨(坡平尹氏)에게 장가들었으며, 딸은 군수 김정립(金正立)에게 시집갔다.
큰조카 효준(孝俊)은 벼슬이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이르고 해풍군(海豊君)의 칭호를 받았으며 시호가 제순공(齊順公)이었고, 조카 승(勝)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다.
공의 호를 삼옥(三玉)이라고 한 것은 문장도 구슬 같고 사람도 구슬 같고 집안 벼슬도 구슬 같았기 때문이다. 공은 평소에 벼슬하기를 즐겨하지 않으며 몸을 조심하여 평생을 마치고자 하여『남이 부귀 누리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내 스스로 힘쓰는 공부를 참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영력(永曆) 임자(1672)년 외손 김진(金振) 삼가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