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 정승선(鄭承先)


병절 교위 정공 비명(秉節校尉鄭公碑銘)
공의 휘는 승선(承先)이고, 자는 사효(思孝)이며, 성은 정씨이고, 본관은 해주로, 고려때 시중(侍中)을 지낸 휘 숙(肅)은 그 시조이다.
고조 휘 강(崗)은 검교(檢校)·한성판윤(漢城判尹)이고, 증조 휘 기(旗)는 선공감부정 겸 부지통례문사(鐥工監副正兼副知通禮門事)이며, 조고 휘 징(澄)과 고(考) 휘 신(侁)은 같이 생원이다.
어머니는 의인 영동 김씨(永同金氏) 별좌 엄(儼)의 따님이자 영중추부사 괴애(乖崖) 수온(守溫)의 후손이다. 배위는 의인 한양 조씨(漢陽趙氏) 만호 세필(世弼)의 따님이자 조선조의 개국공신 한산부원군 조영무(趙英茂)의 후손인데, 소생이 없어, 아우인 직장(直長) 승윤(承尹)의 작은 아들 현령 여충(汝忠)을 양자로 삼았다.
손자는 선무랑 문형(文亨)이고, 딸은 안천록(安天祿)에게 시집갔다. 증손은 희성(希聖)이고, 현손 동익(東益)은 현감, 동직(東稷)은 생원이며, 동설(東卨)은 목사이고, 동석(東奭)은 일찍 죽었으며, 동룡(東龍)은 현감인데 희성(希聖)에게 양자로 갔고, 증손 희현(希賢)은 출계하여 소생이 없다.
공은 병진(1498) 11월 12일에 태어나서 무자(1588) 8월 13일에 세상을 떠났고, 묘는 연성(延城)의 남쪽 신산 장수동 부인의 묘와 봉분은 같으나 정혈이 다르다.
공이 세상을 떠난지 1백년 만에 동설(東卨)이 안악군수(安岳郡守)로 비로소 돌을 깎아 묘도를 세우고 뒷사람에게 고하는 것이다.
불초 현손 동익(東益)은 삼가 기록하고 아울러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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