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정원석(鄭元錫)

학생 정공 묘갈명(學生鄭公墓碣銘)
해주 정씨는 우리나라의 성족(盛族)이다. 고려 때 휘 숙(肅)은 전법사 정랑이고, 윤경(允卿)은 정당문학을 지냈다. 조선조에 와서 대광 판중추는 그 휘가 성(晟)으로 우리 선왕을 도왔다.
동유(東儒)의 아들은 호(琥) 호(琥)의 아들은 익빈(益彬)이며, 공의 아버지는 언채(彦采) 모친은 탐진 최씨이다.
공의 이름은 원석(元錫) 자는 성길(成吉)이다. 태어난 지 세 살에 부친을 여의자, 그 아픔 가슴에 맺혀 날마다 울부짖었고, 모친을 부친처럼 섬겨 효양(孝養)이 한결 같았다.
나이 장성하여서는 어버이를 위해 좋은 땅을 가려 면례(緬禮)를 마친 뒤 돌을 깎아 묘도에 세우고 3년 동안 추상(追喪)하여 상복을 몸에 입었다. 초막을 짓고 시묘하여 못다한 효도 다하였고, 제사에 정성을 하여 깨끗한 제물을 마련하였으며, 경전과 역사로 자손을 가르치니 집안에서 칭찬하고 마을에서 감탄하였다.
순조 무진(1808)과 현종 신미(1871)는 곧 공의 생·졸로, 후사에 유감없이 구례 유곡의 간좌에 장사지냈다.
배위 함양 박씨는 이정(履廷)의 따님으로 현모가 되어 두 아들을 두었으니, 계현(啓賢)·수현(守賢)이다. 세 딸은 다 출가했는데, 재주와 덕이 아울러 드러난 이석하(李碩夏)·장지원(張之遠)과 유감모(柳鑑模)가 세 사위이다.
계현(啓賢)의 2남은 영원(永源 초명은 낙종)·규원(圭源 초명은 낙규)이고, 영원의 4남은 병식(秉植)·병직(秉稷)·병균(秉均)·병홍(秉洪)으로 항렬을 병(秉)자로 하여 가풍을 계승하였다.
계현의 2녀는 강기수(姜基守)·최인현(崔仁鉉)에게 출가하였다. 병대(秉大)·병주(秉周)는 규원의 2남이고 수현의 아들은 낙원(洛源), 낙원의 아들은 병은(秉殷)이니, 어찌 그만한 보응이 없겠는가. 그 경사 증손 현손에 미쳤도다.
내가 쓴 이 명(銘)은 아첨이 아니라 앞으로 만세에 고한 것이다.

가선대부 전 영변군수 해평 윤 영구(尹甯求)는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