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 정계현(鄭啓鉉)

경재 정공 계현 묘갈명(警齋鄭公啓鉉 墓碣銘)
군자의 행실은 천리(天理)에 돈독하고 인도를 정돈할 뿐이다. 이것이 근본을 힘쓰는 일이다. 만약 근본이 세워지지 않으면 도(道)가 어디서 나오겠는가. 하지만 이 어찌 보통 사람으로서 쉽게 이루어질 일이겠는가. 호남의 봉성(鳳城)은 산수가 아름답고 고와서 본시 해동의 추로(鄒魯 : 맹자와 공자의 고향)라 일컬어진 곳으로, 일찍이 높은 선비가 은거하였으니, 바로 경재 정공이다.

공은 헌종 신축(1841) 10월 20일에 태어나서 갑신(1884) 12월 15일에 세상을 떠났고, 순천 황전진촌 뒷등에 장사지냈다.
지금 공이 간 지 이미 3기(紀)에 가깝다. 하루아침에 아는 이가 없어져 현인의 지행(志行)이 후세에 선양되지 못할까 걱정인데, 공의 손자 병식(秉植)이 공의 실적을 기록하여 나에게 그 묘갈명을 부탁하였다.
나는 본시 남의 선(善)을 말하기 좋아하는 터인데, 하물며 공의 아름다운 행실을 어찌 사양할 수 있겠는가. 삼가 그 가장을 상고하건대, 공의 휘는 계현(啓鉉), 자는 여욱(汝旭)이고, 경재는 그 자호이다.
정씨는 해주가 그 본관으로 시조 휘 숙(肅)은 고려 때 전법사정랑(典法司正郞)이고, 정당문학(政堂文學) 휘 윤경(允卿)은 고려의 이름난 대신이다.
판중추 증 대광보국 숭록대부 휘 성(晟)은 조선의 훌륭한 재보(宰輔)로 공의 23세조이고, 고조의 휘는 호(琥), 증조의 휘는 도빈(度彬), 조부의 휘는 언채(彦采)이다. 부친 휘 원석(元錫)은 충효를 세습하고 시례(詩禮)를 강론하였으니, 실로 호남의 망족(望族)이다.
공은 어릴 적부터 애친(愛親)하는 정성이 하늘에서 나와 보통 사람과 달랐으며, 과일 종류를 보면 가져다가 드렸고 어물을 얻으면 끓여서 봉양하였다. 이후로 향리에서 효동(孝童)으로 지목하였다.
장성하여서는 어엿한 용모와 우람한 체구에 성격이 깨끗하고 위엄이 있었으며, 조심스러운 행실이 천품에 근본하였고 고명한 학문이 스스로 익힌 것이었다.
그 부친이 학질에 걸리자 약을 구하고 하늘에 비는 데 표정이 흐리고 마음이 초조하였으며, 어느 날 고기를 먹고 싶어 하자 몰래 다리의 살을 베어 드려 병이 드디어 치료되었으며, 듣는 이는 다 그 지극한 효성을 칭찬하였다.
몇 해를 지나서 또 노병으로 숨결이 다하려 하자, 공은 다시 지혈(指血)을 주입하여 2주야를 회생시켰으니, 그 효성은 아무리 옛사람에 비교해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모친이 또 노병으로 해를 지나도록 병석에 누워, 일어나고 앉는데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자, 공의 아내 고씨(高氏)가 부도(婦道)를 다하여 아침저녁으로 모셔 탕제를 드렸고, 대변을 맛보고 하늘에 비는데 정성을 다하였으니, 대개 공의 효심에 훈도된 바가 그러하였다.
공은 부·모의 상을 만나 애통하는데 법도에 넘쳤고 3년 동안 시묘하여 나물밥과 맹물에 거적자리와 악실(堊室 : 흰 벽칠을 한 상주의 거처)을 일체 예제(禮制)에 따랐으니, 이는 공의 어버이를 섬긴 대강이다.
또한 어려서부터 노년까지 집에서나 향리에서 항상 마음이 성실하고 행실이 정직하여 조금의 구차함도 없었으니, 대인은 어렸을 적의 마음을 상실하지 않는다는 말이 오직 공에게 거의 가까운 것이다.
배위 고씨(高氏)는 본관이 제주로 사인(士人) 정인(廷仁)의 따님이고, 소생은 2남 2녀로서 2남은 낙종(洛鍾)·낙규(洛圭)이며, 2녀는 진주 강기수(姜基秀)와 화순 최인현(崔仁鉉)에게 시집갔다.
낙종은 4남 2녀로 4남은 병식(秉植)·병직(秉稙)·병균(秉均)·병홍(秉洪)이고, 2녀는 청주 한중호(韓重浩)와 화순 최병수(崔炳秀)에게 출가하였다.
낙규는 2남으로 병대(秉大)·병주(秉周)이고, 병식(秉植)은 2남 1녀로 2남은 승묵(承黙)·환묵(桓黙)이고, 1녀는 정홍섭(丁洪涉)에게 시집갔다.
병직(秉稙)은 2남으로 재묵(栽黙)·사묵(士黙)이며, 병식은 천성이 순근(順謹)하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니, 옛사람의 전형을 여기서 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아! 군자는 근본이 섬으로써 도가 나오네. 다리 살 베고 손가락 찢어 어버이 섬기는 데 정성 다했으니, 백행의 근본이오. 천고의 풍성일세. 큰 복록 그 아름다움을 이어 산처럼 높고 해처럼 밝았으므로 향 피우고 붓 뽑아 삼가 이 명을 새기노라.

통정대부 전 비서원 승 김해 허만필(許萬弼)은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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