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BC57~935, 992년간, 총 56대(박(朴)씨 10왕, 석(昔)씨 8왕, 김(金)씨 38왕)
왕 명 재위기간 약 사
1 박혁거세
(朴赫居世)
BC69~AD4
BC57~AD4 13세에 왕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함. 왕 21년에는 수도를 금성(金城)이라 하고 성을 쌓아 국가의 기초를 세움. BC 27년 천일창(天日槍)이 왜(일본)땅으로 가고, 신라의 도공이 왜에 건너가서 신라식 도자기 제작.
2 남해차차웅
(南解次次雄)
?~24
4~24 박혁거세의 맏아들. 석탈해(昔脫解, 탈해왕)를 사위로 삼아 정사를 맏겼다함. 병선 100여척으로 왜구 격퇴.
3 유리이사금
(瑠璃尼師今)
?~57
24~57 남해왕 아들. 6부(部)의 이름을 고치고 성(姓)을 내렸으며 신라 가악의 기원 인 '도솔가' 등을 지음
4 탈해이사금
(脫解)
BC19~80
57~80 석탈해(昔脫解). 65년 국호를 계림(鷄林)이라 고침. 김알지 탄생.
5 파사이사금
(婆娑)
?~112
80~112 유리왕 아들. 월성을 쌓아 백성을 옮겨 살게 하고, 여러 나라를 병합하여 국위를 떨침.
6 지마이사금
(祗摩)
112~134 파사왕의 맏아들. 백제의 협조로 말갈을 물리쳤음. 지미왕(祗味)
7 일성이사금
(逸聖)
134~154 아버지는 유리왕의 형. 농본정책으로 경지를 개간하고 백성의 사치를 금함.
8 아달라이사금
(阿達羅) ?~184
54~184 원명은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현(縣)의 설치와 도로 개통등 내치에 힘씀.
9 벌휴이사금
(伐休)
?~196
184~196 탈해왕의 손자
10 나해이사금
(奈解)
?~230
196~230 벌휴왕의 손자.
11 조분이사금
(助賁)
?~247
230~247 제귀왕(諸貴). 벌휴왕의 손자.
12 첨해이사금
(沾解)
?~261
247~261 벌휴왕의 손자, 조분왕의 동생. 고구려와 국교를 통함.
13 미추이사금
(味鄒)
?~284
262~284 김씨 왕가의 시조
14 유례이사금
(儒禮)
?~298
284~298 조분왕의 맏아들. 백제와 수교함.
15 기림이사금
(基臨)
289~310
298~310 조분왕의 둘째아들. 307년에 국호를 신라로 고침.
16 흘해이사금(訖解)
?~356
310~356 기림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군신들의 추대로 즉위함.
17 내물마립간
(柰勿麻立干)
?~402)
356~402 중국문물 수입에 힘씀. 나밀왕(那密)이라고도 함.
18 실성마립간
(實聖)
?~417
402~417 내물왕이 죽은 후 백성들의 추대로 즉위. 내물왕의 태자 눌지를 시기하여 죽이려다 도리어 피살됨.
19 눌지마립간
(訥祗)
?~458
417~458 내물왕의 아들. 실성왕의 사위. 438년 우차법(牛車法)을 제정하였다. 458년 고구려의 묵호자(墨胡子)가 불교를 전파.
20 자비마립간
(慈悲)
?~479
458~479 왕 17년에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자 나·제동맹을 맺음.
21 소지마립간
(炤知)
479~500
22 지증왕(智證)
437~514
500~514 휘는 지대로(智大路). 왕이라는 칭호를 처음 사용함.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于山國, 울릉도)을 점령함.
23 법흥왕(法興) 514~540 휘는 원종(原宗). 514년 아시촌(阿尸村)에 소경(小京) 설치. 율령(律令) 반포. 52년 이차돈(異次頓) 순교. 532년 금관가야 멸망시킴. 536년 처음으로 연호를 건원(建元)이라함.
24 진흥왕(眞興)
534~576
540~576 휘는 삼맥종(三麥宗). 황룡사(皇龍寺) 건립을 시작. 555년 북한산 진흥왕순수비, 561년 창녕 진흥왕순수비, 568년 황초령 진흥왕순수비와 마운령 진흥왕순수비 건립. 562 대가야 멸망시킴.
25 진지왕(眞智) 576~579 휘는 사륜(舍輪)
26 진평왕(眞平)
?~632
579~632 휘는 백정(白淨)
27 선덕여왕(善德) 632~647 휘는 덕만(德曼). 진평왕 맏딸. 614년 경주 첨성대 건립.
28 진덕여왕(眞德)
?~654
647~654 휘는 승만(勝蔓)
29 무열왕(武烈)
604~661
654~661 휘는 춘추(春秋). 태종무열왕(太宗武烈). 백제를 멸망시킴.
30 문무왕(文武)
?~681
661~681 휘는 법민(法敏) 왕17년에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켜 삼국통일. 유언에 따라 동해 대왕암에 수장함. 667년 김유신과 함께 고구려 정벌에 나섬. 김유신(575~673) 죽음.
31 신문왕(神文)
?~692
681~691 휘는 정명, 명지(政明,明之). 문무왕의 아들. 만파식적을 만듦.
32 효소왕(孝昭)
643~702
692~702 휘는 이홍(理洪), 이공(理恭). 신문왕의 맏아들. 692년 설총이 이두(吏讀)를 정리.
33 성덕왕(聖德)
?~737
702~737 휘는 흥광(興光). 723년 혜초가 서역(西域)에서 돌아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저술.
34 효성왕(孝成)
?~742
737~742 휘는 승경(承慶). 성덕왕의 둘째 아들.
35 경덕왕(景德)
?~765
742~765 휘는 헌영(憲英). 751년 대상(大相) 김대성(金大成)이 불국사(佛國寺) 창건.
36 혜공왕(惠恭)
765~780
765~780 휘는 건운(乾運). 경덕왕의 아들. 8세에 즉위하여 여자 놀이를 하며 여자처럼 행동을 함. 대공의 난, 김지정의 난 등으로 나라가 어지러웠으며 선덕왕에게 피살됨. 770년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주조.
37 선덕왕(宣德)
?~785
780~785 휘는 양상(良相). 내물왕의 10세손.
38 원성왕(元聖)
?~798
785~798 휘는 경신(敬信). 김주원이 냇물이 넘쳐 궁에 못 들어가자 먼저 궁에 들어가 왕이됨. 788년 처음으로 독서출신과(讀書出身科)를 설치.
39 소성왕(昭聖)
?~800
798~800 휘는 준옹(俊邕). 원성왕의 태자인 인겸(仁謙)의 아들. 2년 만에 죽자 이후에 왕위 쟁탈전이 벌어졌음.
40 애장왕(哀莊)
788~809
800~809 13세에 즉위. 섭정하던 숙부 김언승(金彦昇)에게 왕위 빼앗기고 시해됨. 해인사 창건.
41 헌덕왕(憲德)
?~826
809~826 휘는 언승(彦昇). 조카를 죽이고 왕이됨. 친당정책. 백영(白永)에 명하여 패강(浿江)에 300리나 되는 장성을 쌓음.
42 흥덕왕(興德)
?~836
826~836 휘는 수종(秀宗), 경휘(景徽). 원성왕의 손자며 헌덕왕의 아우. 828년 완도에 청해진을 만들어 장보고(長保皐)에게 관리토록 함. 능은 경북 경주 안강읍 육통리(사적 제30호)
43 희강왕(僖康)
?~838
836~838 휘는 제륭(悌隆), 원성왕의 손자. 흥덕왕이 후사 없이 죽자, 삼촌인 균정(均貞)을 죽인 후 왕위에 올랐으나, 그를 도운 김명(金明)등이 난을 일으키자 자살함.
44 민애왕(閔哀)
?~839
838~839 김명(金明). 시중으로 있을 때 흥덕왕이 죽자, 김제륭을 왕으로 내세우고 스스로 상대등이 되었다가 흥강왕을 죽게 하고 왕이됨.
45 신무왕(神武)
?~839
839 휘는 우징(祐徵). 민애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으나, 수개월 뒤 반대파인 죽은 이홍(利弘)의 저주를 받아 죽었다함.
46 문성왕(文聖) 839~857 휘는 경응(慶膺). 신무왕의 태자. 846년 장보고 반란, 염장(閻長)에게 피살됨.
47 헌안왕(憲安)
?~861
857~861 휘는 의정(誼靖). 후사가 없어 왕족 응렴(膺廉)을 사위 삼고 왕위를 물려줌.
48 경문왕(景文)
?~875
861~875 휘는 응렴(膺廉)
49 헌강왕(憲康)
?~886
875~886 휘는 정(晸). 처용무가 유행하고, 사회가 사치와 환락에 빠져듦.
50 정강왕(定康)
?~887
886~887 휘는 황(晃). 경문왕의 둘째 아들로 진성여왕의 오빠. 몸이 약해서 즉위 2년 만에 죽음.
51 진성여왕(眞聖)
?~897
887~897 휘는 만(曼). 음행(淫行)을 일삼고 병제(兵制)가 퇴폐하여 나라가 혼란에 빠짐.
52 효공왕(孝恭)
?~912
897~912 휘는 요(嶢). 정강왕의 아들. 궁예와 견훤에게 많은 영토를 빼앗기고 정사를 돌보지 않아 후삼국이 정립되는 것을 막지 못함.
53 신덕왕(神德)
?~917
913~917 휘는 경휘(景暉). 효공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백성의 추대를 받아 즉위함.
54 경명왕(景明)
?~924
917~924 휘는 승영(昇英). 신덕왕의 태자. 즉위 후 쇠퇴한 국운을 건지려 후당(後唐)에 구원을 청하였으나 실패.
55 경애왕(景哀)
?~927
924~927 휘는 위응(魏膺). 927년 포석정에서 연회를 하다가 견훤의 습격을 받자 자살함.
56 경순왕(敬順)
?~978
927~935 휘는 부(傅). 경애왕이 죽은 후 견훤에 의하여 즉위 하였으나, 935년에 왕건에 항복하여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경주 사심관(事審官)으로 여생을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