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기사 (펌)

정덕근 3 3,362 2011.10.01 03:17
“나는 왕의 딸이다”
경혜공주 묘엔 문인석만 쓸쓸히
동생 단종과 남편 잃은 비극적 삶

   고양시 대자동 대자2리 경혜공주의 묘(왼쪽)와 부마 정종의 묘(오른쪽). 지난달 31일 찾는 발길이 거의 없는 경혜공주 묘역을 문인석만이 쓸쓸히 지키고 있다
동생 단종과 남편 잃은 비극적 삶
드라마 ‘공주의 남자’ 계기로 관심
찾는이 없는 대자동 묘 풀만 무성
조선시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드라마 <공주의 남자>가 화제다. 단종의 왕위를 찬탈해 세조가 된 수양대군과 이에 맞서는 김종서를 한 축으로, 수양의 딸 이세령(문채원 분)과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박시후 분)라는 원수 집안 자식들 사이의 사랑을 다뤘다. 하지만 극 초반부터 이들 두 주인공에 못지않게 문종의 맏딸이자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敬惠公主·홍수현 분)가 시청자의 눈길을 강하게 잡아챘다. 공주의 다가올 비극적 운명과 강단있는 카리스마 때문이다.   경혜공주(1436~1473년)는 한많은 생을 마감한 뒤 이곳 덕양구 대자동 대자골에 묻혔다. 공주는 1450년(세종 32) 참판 정충경의 아들인 정종과 혼인했고 정종은 영양위에 봉해졌다. 하지만 역모사건에 연루돼 동생 단종과 남편 정종까지 능지처참을 당한다. 국도 1호선 통일로 구파발 방면에서 문산쪽으로 가다 보면 필리핀참전기념비가 보인다.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 대자동 25통(대자2리) 마을회관까지 왔지만 목표지점은 되레 오리무중이 되고 말았다. 문종의 적장녀이니 이정표나 문화재로 보호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대자 2리까지 찾아왔지만 마을 사람들은 경혜공주의 묘를 알지 못했다. 길은 최영장군 묘와 성령대군 묘 방향, 이선군 묘 방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최영장군 묘와 성령대군 묘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벌써 해가 질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조급증을 누르던 차 한 어르신을 만났다.“어르신,이 근처에 경혜공주 무덤이 있다던데요 아세요?”  성령대군의 후손으로 9대 째 대자 2리에 산다는 70대 초반의 어르신은 경혜공주 묘를 알고 있었다. 어르신이 일러준대로 가보니 이선군 묘 아래에 충렬사라는 사당이 보였다. 그 충렬사를 오른쪽으로 끼고 경혜길을 따라 올라갔다. 하지만 길은 곧 끊어졌다. 10미터 앞에 비석하나가 보였지만 무릎 위까지 웃자란 풀숲이 접근을 막았다. 왔던 길을 내려가 민가의 한 할머니한테 다시 길을 물었다.

이 마을에서 12년째 사는 윤봉선 할머니(78세)는 말없이 쪼그리고 앉더니, 돌맹이로 땅바닥에 지도를 그리며 설명했다. 윤씨 할머니가 일러준 공주의 묘는 지척에 있지만 매우 멀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굽있는 신발로 어떻게 올라가냐”며 “신발을 빌려줄테니 신고 가”라는 외침을 뒤로 하고 아까 보았던 비석이 보이는 곳까지 다시 올라왔다. 경혜공주를 추모하는 비석이었다.

윤씨 할머니는 그 풀숲길을 따라 가다가 조그만 도랑을 어떻게해서든 건너라고 했다. 그러면 포크레인으로 닦은 길이 보일 것이라고. 금방 뱀이라도 나올것 같아 오싹한 생각이 들었지만 바지를 걷고 도랑을 건너자 장마로 엉망이 된 길이 이어졌다. 숨이 찰 만큼 뛰다 시피 올라갈 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곳에 공주의 묘가 있다는 말인가.

 발굴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게 찾은 경혜공주의 묘가 마침내 보였다. 남편 정종의 묘도 비석과 함께 나란히 있었다. 공주의 묘를 일 년 가야 몇명이나 찾을까. ‘500년 동안의 고독’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공주의 삶은 비극 그 자체였다. 동생 단종과 남편 정종은 억울한 죽음을 당한 데다 공주 자신까지 노예신분인 관비로 전락했다고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은 전한다.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야사이긴 하지만 실제로 관비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왕조실록 세조편에는 한동안 경혜공주라는 명칭이 사라지고 ‘정종의  처’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기간 동안 관비로 전락했다가 다시 복권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시 한번 <연려실기술>을 들춰 보면, 공주가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얼마나 기개가 넘치는 인물이었는지 잘 나타난다.

 “순천부사 여자신은 공주에게 관비의 사역을 시키려 하였다. 그러자 공주가 곧 대청에 들어가 의자를 놓고 앉아서 말하기를 ‘나는 왕의 딸이다. 비록 죄가 있어 귀양을 왔지만 수령이 어찌 감히 나에게 관비의 사역을 시킨단 말이냐?’ 하므로 마침내 부리지 못하였다.”(단종조고사본말, 정종 편)

 세조는 경혜공주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백성들의 여론을 두려워 했다고 한다.  
 공주의 묘 주위로 날벌레들이 어지러이 날고, 무덤을 굽어보는 소나무는 가지가 꺾여 있었다. 쑥부쟁이와 명아주 그리고 산딸기 가시덩굴이 온통 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문인석 두개와 장명등 만이 경혜공주의 묘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이라는 곡이 들리는 듯 했다.

 경혜공주의 묘의 건너편 산에는 최영장군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무너지는 고려 왕조를 붙들고 조선 태조 이성계와 맞섰다 스러진 최영 장군. 그렇게 세워진 조선의 공주로서 왕위를 뺏으려는 숙부에게 고통당한 경혜공주. 두 사람의 비극적 운명이 시간을 뛰어넘어 서로의 슬픔과 한을 마주하고 있다.  저녁 7시가 가까운 시간, 무덤 주변으로 땅거미가 밀려왔다. 서둘러 사진을 몇 장 찍고 내려와 공주의 묘를 알려준 윤씨 할머니를 다시 찾았다.  “충렬사는 정태수가 지었지. 두 번 제사 지내는 가 싶더니 감옥가더구만.” 윤봉선 할머니는 한보 정태수 회장이 경혜공주의 남편 정종의 후손이라고 전했다.

Comments

관리자 2011.10.04 16:16
기사 내용 중 묘 아래에 충렬사는 "충민사(忠愍祠)"로 바로잡습니다.
정기환 2011.10.05 13:40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정연중 2012.01.01 14:50
좋은 기사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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