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강변 캠핑(Camping)
청초 정 태 종
고향은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하고 아늑함을 안겨준다. 어린시절 고향에서의 온갖 추억은 한평생 가슴에 깊히 남아서 잊혀지지 않는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새록새록 되살아나며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내 고향은 지리연봉들이 병품처럼 둘러싸고 언제나 ‘이리오라고 부르며 손짓’하는 산골 동네이다. 주위가 온통 산이고 계곡이며 제법 큰 강물이 마을을 휘감고 흐른다. 어린 시절 나는 들판을 쏘다니며 소를 먹이고 꼴 베고(?) 강에서 멱감으며 고기잡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저 신나게 놀기 바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나는 여름을 가장 좋아했다. 봄과 가을은 모심기나 벼베기와 타작으로 일이 너무 많고 힘들어서 싫었다. 겨울 또한 추워서 밖에서 놀기가 어려워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름은 해가 길고 즐거운 방학도 끼어 있어 친구들과 재미있게 어울려 놀 시간이 쌔고 쌔서 제일 좋아 했던 것이다. 여름이 되면 무엇보다 강에 가서 미역감고, 고기 잡으며 노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고 즐거울 수 없었다. 친구들은 여름은 너무 덥고 파리나 모기들이 귀찮게 한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여름에 푹 빠져 버렸던 것이다. 특히 여름방학에는 신바람이 났다. 오전부터 휘파람을 불며 발걸음도 가볍게 대나무 낚싯대를 메고 강으로 갔다. 작은 돌을 들어 미끼를 잡아 꺽지 낚시를 했다. 꺽지가 잘 물지 않으면 고동(다슬기)을 잡으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이렇게 강에 푹 빠져 배고픔도 잊어버리는 바람에 점심도 거르기가 일쑤였다. 잡은 물고기나 다슬기들을 집에 가져오면 좋은 찬거리가 되어 밥상이 한결 푸짐하기도 했다. 바람이 잔잔해 고기를 제법 잡은 날은 부모님께 덤으로 칭찬까지 듣게 되어 어깨가 으쓱거리곤 했다. 그런 반면 장마가 지거나 폭우로 강물이 넘쳐서 멱을 감거나 고기잡이를 못하게 될 때에는 정말 심심하고 따분해서 안달이 났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여름도 밤은 딱 질색이었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세상사 좋은 일만 있지는 않는 법, 불청객인 모기와 파리의 극성스럽고 성가시며 지긋지긋한 괴롭힘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모기장도 모기약도 없던 시절이라 부채를 들고 모기와 파리를 쫓거나 해질녁 마당 한 구석에 쌀겨나 잡초로 매캐한 모깃불을 놓고 모기와 한바탕 전쟁을 치루곤 했다. 그때의 모기와 파리들은 왜 그렇게 지독하고 성가시게 굴며 인정사정(?)도 없었는지 모르겠다. 밤새 자고 일어나면 아이들은 얼굴과 팔다리를 모기에 물려서 정신없이 긇어 대며 괴로워했다. 부모님들은 겨우 물린 부위에 침을 발라주었을 뿐 속수무책이었으니... 비록 지나간 일이지만 두 번 다시 돌이켜 보고 싶지 않다.
무더운 한 여름밤은 정말로 하루하루 보내기가 고역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의 친구가 밤에 강가에 잠을 자러 가자고 귀가 솔깃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마 열 두어 살 때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친구의 제안에 그 자리에서 대번에 좋다고 했다.
우리는 실행할 날짜와 장소 등을 의논했다. 또 잘 때 필요한 홑이불과 긴 바지와 저고리, 수건 등을 준비하기로 했다. 우리는 잠 잘 장소를 집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 앞점동마을(산청군 시천면) 앞 강변으로 정했다. 그곳은 평소에 우리가 자주 헤엄치고 놀던 곳이고 물살이 약한 곳이었다. 물가에는 평평하고 넓적한 바위가 있어서 누워 자기가 편할 것 같았다. 또한 무엇보다 안전한 곳이기도 했다.
야숙을 하러 가는 날은 달이 밝은 날을 선택하기로 했다. 우리는 드디어 실천하기 하루 전 대충 봐 두었던 장소를 한번 더 찾아가서 꼼꼼히 살폈다. 친구와 나는 드디어 달도 밝고 무덥고 후덥지근한 날 밤 부모님께 강변에 가서 자고 오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집을 나섰다. 야영 준비물은 아주 간단해서 홑이불과 바지, 수건 등을 싼 보따리 하나가 전부였다. 길은 낯설지 않은 데다 달이 밝아 쉽게 장소에 도착했다. 생전 처음 집을 떠나 밤에 강가에서 잠을 잔다는 기대와 설레임으로 나는 가슴이 꽤나 두근거렸다.
강변은 여울물 흐르는 소리만 나고 온 세상이 멈추어 버린 듯 고요했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서로 다투며 반짝이고 달빛은 은은하게 강여울 위를 환하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 우리는 미리 답사한 물가 너럭바위에 잠자리를 정하고 먼저 옷을 홀랑 벗고 조심스럽게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은 미적지근 했으나 그래도 시원했다. 한 여름밤의 무더위는 온데간데없이 금시 사라졌다. 친구와 나는 그저 ‘아아 시원하고 좋다’는 말만 했다. 우리는 시원해질 때까지 몸을 담그고 물 밖으로 나와 바위에 돌베개를 하고 나란히 누웠다. 달은 더욱 빛나고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이따금 별똥별이 길게 꼬리를 끌고 사라졌다. 강물은 쉬이쉬이 쇄쇄 소리를 내며 계속 귓전을 울렸다. 친구와 나는 강물소리와 밤하늘에 취한 듯 서로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강물과 하늘의 별과 대자연이 서로 한마음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수많은 별 가운데에서 북두칠성을 찾으며 장래의 희망과 꿈을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 공부를 좀 더 해서 ‘공무원을 해 볼까’하고 생각했다. 평소 꿈이나 희망에 대해 뚜렷한 목표를 별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막연히 품어온 것이었다. 우리는 얼마 지난 후 긴 바지와 적삼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넓은 바위 위에 드러누웠다. 수건으로 감싼 돌베개를 베고 잠을 청했다. 무명 홑이불을 덮으니 이내 스르르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딱딱한 넓적바위가 조금 등허리에 베기고 불편했으나 쉽게 잠이 든 것이었다. 그렇게 성가시게 굴던 모기와 파리가 한 마리도 없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생전 처음으로 밤에 집이 아닌 밖에서, 부모님이 옆에 없는 곳에서 잠을 자는데도 이상하게 무섭거나 두려운 마음은 없었다.
그 이튿날 아침 일어나 보니 벌써 날이 환히 밝았다. 잠은 아주 푹 잘 잤던 것 같다. 싱그럽고 상쾌한 아침이었다. 집보다 공기가 맑은 것 같고 강바람도 조금 불어서 몸이 한결 더 개운하고 가뿐했다. 여울물은 여전히 아름다운 멜로디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기지개를 켜며 강변의 상큼한 공기를 들어 마셨다. 친구도 싱긋 웃으며 잘 잔 듯 기분이 좋다고 했다. 우리는 짧은 바지로 갈아입고 이불 등을 보자기에 싸 들고 집으러 향했다. 좁은 길섶의 논에서는 벼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쑥쑥 자라는 듯 푸르고 싱싱했다. 친구와 나는 그다음 날에도 어제 잠을 잤던 곳에서 강변 야숙을 했다. 우리는 둘째 날 밤에도 전날처럼 물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넓은 바위에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든 줄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연사흘 밤을 강가에서 자고 집에 오니 부모님께서 걱정을 하셨다. 부모님은 별다른 말은 하시지 않고 ‘여름이라도 밖에서 이슬맞고 잠을 자면 몸이 축나고 해롭다’면서 이제 그만 집에서 자라고 말씀하셨다. 친구도 어른들로부터 나와 같은 주의를 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강변에서 잠자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린시절 우리들의 한 여름밤의 강변야숙은 이렇게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그 이후 이런저런 사정으로 강변야숙을 못했다. 19세에 공무원시험에 합격, 임지인 부산으로 나가면서 친구와 떨어지고 고향에 가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강변 캠핑 또한 할 수 없었다. 해마다 찌는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고향 강변에서 야숙을 한 소년시절의 짧은 일탈이 문득문득 되살아난다. 이제는 지난날처럼 무던히도 괴롭히던 모기와의 싸움도 사라진지 오래인데 왜 고향에서의 꿈같은 강변 야숙, 그 한여름 밤의 일상의 탈출이 그리워지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