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남자에서의 선조 정종의 이해3

정기환 0 4,375 2011.09.29 12:31
달리는 말 위해서 자유로운 바람을 느끼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던 이세령(문채원). 원수 집안의 김승유(박시후)와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 그녀는 자신에게 정해진 모든 삶을 거스르고 어릴 때부터 원했던 격하고 가슴뛰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김승유에게 '저승길이어도 좋다'며 함께 할 것임을 고백하는 그녀는 세상 누구나 바라는 공주의 자리를 포기하고 밖으로 뛰쳐 나왔습니다. 공주로서 사는 삶이 행복하다 여기고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운명의 강요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진짜 공주, 수양대군(김영철) 때문에 동생 단종(노태엽)을 잃고 남편 정종(이민우) 마저 잃을 위기에 처한 경혜공주(홍수현)는 문종(정동환)의 유일한 적장녀임에도 그 신분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수양대군 무리들은 왕족의 체면치레를 생각하여 대놓고 모질게 대하지 않을 뿐 정종과 경혜공주의 일거수 일투족을 단속하였습니다. 남편을 따라가 이제서야 부부의 행복을 느끼게 된 경혜공주. 거사를 준비하며 유배지에서 임신한 아이가 복덩이라며 기뻐하는 부부에게 불행은 코앞으로 다가와 있습니다.


거사를 앞두고 함께한 공주들과 공주의 남자들

아버지와 절연하고 노비로 쫓겨나면서까지 공주의 자리를 버리고 사랑을 선택하는 여자 세령, 공주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도 정략결혼을 자청하고 부부의 인정까지 버려야 하는 경혜공주. 정종의 비극적인 죽음을 앞두고 두 사람의 눈물겨운 선택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단히 붙잡아놓을 듯합니다. 금성대군(홍일권), 정종, 총통위와 함께 거사를 도모하기로 한 김승유와 세령을 신면(송종호)이 따라와 위협합니다. 끝까지 두 친구를 배신하는 신면의 잔인함이 어찌 보면 가슴아프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수양대군은 의외로 꽤 오래 정종을 살려두었습니다. 극중에서는 많은 인물과 사건이 생략되어 금성대군과 함께 복위운동을 꾸미는 것처럼 묘사됐지만 실제로는 1457년에 금성대군과 단종이 죽고 1461년에 정종이 죽습니다. 역모 혐의로 정종이 죽을 때는 이미 단종이 자결하고 난 뒤였단 뜻입니다. 어찌 보면 굳이 죽일 필요가 없었죠. 정종과 금성대군은 둘 다 종친으로 보통 왕가 사람들을 처형할 때는 사사하거나 자결을 명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정종의 기록(세조 7년)을 보면 정종은 능지처참을 당한 것도 같습니다.



굳이 경혜공주의 남편을 죽여야 했던 이유?

경혜공주의 남편 영양위(鄭悰)는 단종이 선위할 때까지는 수양대군과 그닥 사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계유정난의 공신으로도 등록되어 있고 수양대군을 몰아내려는 음모를 고변해 품계가 오르기도 합니다. 또 세조 초기에는 외교 관리 역할도 해냅니다. 정종은 단종을 위해 수양대군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수양대군이 정종을 끼워넣는 모양새가 좋을 듯해 종친의 일원으로 대우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부마로 간택된 정종의 가문이 한미하거나 무시할만한 집안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정종의 고모는 세종의 아들 효령대군의 아내입니다. 효령대군은 대군 시절 혼인해 6남 2녀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정종의 아버지 정충겸 역시 꾸준히 벼슬을 유지했던 인물로 그들의 집안은 꽤 부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극중에서처럼 가난하여 사채를 쓰고 홀어머니를 모시며 한량처럼 살지는 않았을 거란 뜻입니다. 경혜공주와 혼인할 때도 꽤 큰 집을 지었습니다. 두 사람이 혼인전 얼굴을 볼 수 있었다면 그건 효령대군 덕이었겠지요. 문종이 하나 뿐인 적장녀를 아무곳에나 시집보낼 리도 없고 왕실과 대를 이어 사돈맺을 만큼 명문가였으니 위세가 당당했을 것입니다.

극적이지만 사채업자 때문에 길에서 만날 일은 없었을 두 사람.

단종의 아내 정순왕후의 아버지 송현수 역시 수양대군과 꽤 친구 사이였음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정순왕후의 어머니와 한명회의 아내는 사촌 간이었고, 정순왕후의 고모는 영응대군(문종의 막내 동생)의 첫째 부인입니다. 송현수의 집안 역시 무시할만한 집안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수양대군이 단종 사사 이후 굳이 정종을 죽일 필요가 없음에도 능지에 처한 것은 송현수를 비롯한 단종의 측근들을 제거한 것과 같은 뜻이라 보입니다.

정통성없고 손가락질 받는 왕위를 받은 수양대군은 꾸준히 백성들의 지탄을 받고 백성들은 그를 비난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퍼트렸습니다. 현덕왕후의 혼령이 수양가족에게 저주를 내렸다거나 '공주의 남자'의 모티브가 된 세희공주 이야기도 전후관계가 종종 맞지 않아 백성들이 원망을 담아 살을 덧붙이거나 창작한게 아니겠느냐 합니다. 수양 무리들은 단종에게 힘을 실어주고 이후에라도 수양대군을 비난할 만한 사람들의 싹을 잘라버리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 그래도 단종을 처벌하고 백성들의 여론이 좋지 않은데 자신들에게 반발할 세력들은 처벌해야했고 수양대군은 경혜공주나 정순왕후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자신의 반대파들을 하나하나 역모에 엮어 사라지게 합니다. 때로 학살된 사람들 중에 몇몇은 가짜 역모에 엮인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습니다. 군왕의 자리가 따뜻해 보여야 하는 이유로 마음에 없는 친절도 베풀어야 하지만 원치 않는 살인도 해야한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공주가 임신했음을 알고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는 정종

1461년 7월, 정종은 유배지에서 역모를 꾸미다 발각되고 고문을 당합니다. 고문을 심하게 당했던 까닭인지 내의원에서 치료도 받았지만 그해 10월엔 처형을 받습니다. 당시 기록이 좀 애매한게 '정종과 그 일에 관여한 5인을 능지 1명, 참형 1명'의 처벌을 내린다고 했는데 명색이 종친이었던 정종에게 능지처참이나 참수형을 내렸다는 것인지 정종은 사사하고 그들 중 하나에게 그런 처벌을 내렸다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수양의 전후 태도로 보아 끔찍한 능지형을 받은 사람이 정종이라 봐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놀음 따위 할 여유가 없다며 다부지게 김승유와 혼인을 결심하던 경혜공주. 경혜공주의 사랑이자 진정한 공주의 남자였던 정종은 비극적인 왕가의 싸움에 휘말려 죽어갑니다. 그것도 능지처참이란 끔찍한 형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구하러 가겠다는 김승유를 말리며 두 사람 다 잃을 수 없지 않느냐고  다부지게 말하는 경혜공주. 그녀는 한번은 정종을 살리러 무릎을 꿇었지만 이번에는 정종을 그냥 보내줘야한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닫고 있는 듯합니다. 임신한 몸으로 남편 잃는 슬픔을 오롯이 맛보게될 경혜공주의 눈물이 어쩐지 안쓰럽기만 합니다. 숙부 수양대군은 최후에 이 많은 억울한 원망을 어찌 지고 가려고 그리 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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