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도(案上圖)

정상열 0 3,107 2015.11.14 13:12
 안상도(案上圖)는 신당(新堂)선생의 도학(道學)의 밑 그림이요 이정표(里程標)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안상도를 책상머리에 붙여두고 평생 이를 수행 실천하려 하였으니 선생의 도학이 높은 경지에 도달하였으리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고 또 선생의 행적(行蹟)이 이를 실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1.     안상도(案上圖)의  해명

 안상도는 대칭적(對稱的), 대대적(待對的)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즉 상대적인 두 가지 사실을 서로 맞세워 구성 배열하였다. 이 대칭적이란 표현을 좀 더 철학적인 용어로 바꾸어 표현한다면 대대적(待對的)인 구성이라고 할 수있다. 대대(待對)란 동양적 사물관(事物觀)의 철학적 표현이다. 즉 모든 사물은 단독적(單獨的)으로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반대되는 것과 짝을 이루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 짝을 이루는 형식이 그저 대립적(對立的)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 다른 두 존재가 서로 상대를 기다리고 필요로 하면서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태극(太極)의 그림에서 양(陽)이 음(陰)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고 음(陰)이 양(陽)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상태를 음양대대(陰陽待對)의 관계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모든 사물을 이와같은  대대(待對)의 관계로 파악하는데 안상도(案上圖)의 구성원리에도 이 대대의 원리가 적용되어 있다.
  대대(待對)의 원리에 곁들어 체용(體用)의  원리도 배열되어 있다고 볼 수있다.  체용(體用)이란 용어도 사물의 존재양식(存在樣式)을 나타내는 철학적 개념이다. 즉 체(體)는 본체(本體)를 뜻하고 용(用)은 작용(作用)을 뜻한다. 체(體)와 용(用)은 서로 상즉(相卽)해 있어서 서로 뗄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다. 그리고 때로는  체(體)가 낳은 용(用)이 도리어 체(體)가 되고  용(用)을 낳은  체(體)가 도리어 용(用)이 되는 순환 작용을 할 수도 있다.
 이 대대(待對)와  체용(體用)은 동양적 사물의 존재양식(存在樣式)과 운동양식(運動樣式)으로  나타내는 기본적 철학 개념이다. 안상도(案上圖)는 이 원리를 밑바탕에 깔고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원리에 입각하여 안상도(案上圖)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낙천(樂天) - 정기의관존기첨시(正其衣冠尊其瞻視)와
        안명(安命) -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 대가 되고
 둘째 존[存] - 경이직내(敬以直內) 엄약사(儼若思)와
        성[省] - 의이방외(義以方外) 무불경(無不敬)이 대가 되고
 셌째 명경(明鏡) - 잠심이거대월상제(潛心以居對越上帝)와
        지수(止水) - 출문여빈승사여제제(出門如賓承事如祭)가 대가 되고 그 아래  
        이어서 야복몽매(夜卜夢寐)와 주험처자(晝驗妻子)가 대가 되고
        심물망(心勿忘)과 물조장(勿助長)이 각각 대가 된다.
 넸째 아홉 가지 모습(九容)과 아홉 가지 생각(九思)이 대가 되고
 다섯째 태(怠)와 욕(慾), 동심(動心)과 인성(忍性)이 각각 대가 되고
         범범유유도불제사(泛泛悠悠都不濟事)와
         면면순순자유소지(勉勉循循自有所至)가 각각 대가 된다.
 위의 대대(待對)의 관계는 동시에 채용의 관계이기도 하다.

 
  2.   도(圖)의 문구(文句)의 출전(出典)과 그 의미

 첫째 낙천(樂天)과 안명(安命) 조(條)에 관하여

 낙천(樂天)과 안명(安命)은  이 그림의 대강령(大綱領)이요 이념(理念)이라고 할 수 있다. 낙천과 안명이 어떠한 것이기에 그런가?  먼저 낙천(樂天),안명(安命)의 뜻을 밝혀 보자. [주역] 계사(繫辭) 제4장에

     역(易)은 천지에 준(準)하는 것이라 천지의 도(道)를 감싸나니 - 천지와 흡사한지라 어김이 없으며 지(知)는 만물에 두루 미치고 도(道)는 천하를 이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나침이 없이 두루 행하되 절도를 넘지 아니하고 낙천지명(樂天知命)하게 된다. 그러므로 근심하지 아니하며 제 자리에 평안하여 인(仁)에 독실한지라 능히 사랑하게 된다.
    (易 興天地準  故能彌綸天地之道一興天地相似 故不違 知周乎萬物而道濟天下 故不過    旁行而不流  樂天知命  故不憂  安土敦乎仁  故能愛)

 이것이 낙천지명(樂天知命)의 출전(出典)이다.  낙천(樂天)은 천(天)을 즐긴다는 뜻이다. 천(天)은 유교(儒敎)의 궁극자(窮極者), 절대자(絶對者)개념이다. 모든 학문이나 종교가 그러하듯이  그 궁극적인 경지는 절대자와 합일(合一)되는 경지에 도달하는데 있다. 따라서 유가(儒家)학문의   궁극적인 경지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즉 사람이 하늘(天)과 합일 되는데 있다. 낙천(樂天)은 절대자인 천(天)과 합일되고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세계를 즐긴다는 뜻이다. 따라서 낙천(樂天)은  유가인(儒家人)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계인 것이다.
 안명(安命)은  천명(天命)에 평안하다는 뜻이다. 천명이란 무엇인가? 하늘이 내게 내려 준 나의 운명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타고난 나의 분수와 나의 한계를 말한다. 사람이 타고난 자기의 분수와 한계를 아는 것을 지명(知命)이라 한다. 사람은 타고난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알 때 건전한 자기의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논어]의  맨 마지막 절에 공자께서 말하기를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不知命無以無君子也)고 하였다. 안명(安命)은 지명(知命)의 결과에서 오는 현상이다. 지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의 운명에 평안해 함을 말함이다.
 우리는 철학에서 흔히[우주와 인생의 근본 원리를 탐구한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표현에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안상도(案上圖)의 낙천안명(樂天安命)이 바로 이 말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우주 자연의 원리를 알아 그것을 즐기고 동시에 자신의 운명과 한계를 알아 그에 평안해 하는 것 .이 두 가지는 학자가 학문을 하는 궁극 목적이며 학자가 도달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인 것이다. 따라서 안상도(案上圖)에 있어서 이 낙천(樂天)과 안명(安命)은 이 그림의 대 강령이다.
 낙천(樂天)아래 정기의관존기첨시(正其衣冠尊其瞻視)는 낙천(樂天)을 추구하고 구현 하려는 실천 방안이다. 이 말의 뜻은 [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높이 둔다]는 뜻으로 군자의 단정하고 엄연한 자세를 말한다. 이 말의 출전(出典0은 [논어(論語)] 요왈(堯曰)편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의관을 바르게 하고 바라 봄을 높이 하면 엄연하여 사람들이 바라보고 두려워하나니 이는 위엄이 있으되 사납지 않음이 아닌가?](君子正其衣冠其瞻視 儼然人望而畏之  斯不亦威而不猛乎)고 하였다.이 말은 또한 주자(朱子)의 경재잠(敬齋箴)의 첫 구절 이기도 하다. 즉 낙천(樂天)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新堂선생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그 기본 자세를 이와 같이 가지려고 했던 것이다.
 안명(安命)아래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은 [ 자기가 바라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은 같은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도 원하지 아니하고 내가 바라는 것은 남도 역시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바라지 않는 바  즉 내가 싫어 하는 것을 남에게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공자의 사상에 있어서 행동의 중요한 준칙(準則)이다. 공자는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에서 자공(子貢)이 "한 마디 말로서 종신토록 행할 말이 있겠습니까?"(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하였을 때 답하기를 "서(恕)이니 자기가 하고 싶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것이니라"(恕乎  己所不欲勿施於人)고 하였다.서(恕)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의 합자(合字)이니  같은 마음이란 글자이다. 곧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려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은 남도 바라지 않을 것이니  그런 행동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논어]안연(顔淵)편에서 중궁(仲弓)이 공자에게 인(仁)에 대하여 물었을 때에도 공자는 역시 이[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으로서 대답하였다. [기소불욕물시어인은]은 공자가 강조한  대인적(對人的) 윤리행위의 핵심개념(核心槪念)이다.이 [기소불욕물시어인은]은  [대학](大學) 에서는 평천하(平天下) 즉 천하를 바로 잡는 원리로까지 승화되어 있다. [대학] 전(傳)제 10 장에 평천하의 원리로 [혈구지도](矩之道)가 설명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바로 실증하기 위하여 혈구지도를 여기 옮겨보자.

   윗 사람이 내게 하는 바가 싫거든 그런 방법으로 아랫 사람을 부리지 말며 아랫 사람이 내게 하는 바가 싫거든 그럼 방법으로 윗 사람을 섬기지 말며 앞사람이 내게 하는 바가 싫거든 그런 방법으로 뒷사람에게 앞서지 말며 뒷사람이 내게 하는 바가 싫거든  그런 방법으로 앞사람을 따르지 말며 오른쪽 사람이 내게 하는 바가 싫거든 그런 방법으로 왼쪽 사람을 사귀지 말며 왼쪽 사람이 내게 하는 바가 싫거든 그럼 방법으로 오른쪽 사람을 사귀지 아니하는 것 이것을 혈구지도라고 한다.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使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矩之道)

혈구지도 (矩之道)란 자(矩)로 재()는 원리(道)라는 뜻이다. 윗글에서 표준이 되는  자(矩)는 곧 나 자신이고 더 엄밀하게는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을 미루어서 남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리하여 내 마음과 같이(恕) 행동하는 것이  곧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다.
 안상도案上圖)에서는  수양의 대 전제로서 낙천(樂天)과 안명(安命)을  제시하고  그 실천내용으로 정기의관존기첨시(正其衣冠尊其瞻視)로서  군자의 기본 자세로 삼고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으로서 실천 원리로 삼았다.
  이를 체용(體用)의  원리로  따진다면  낙천이 체요 안명이 용이요, 정기의관이 체이고 물시어인이 용이다.

  둘째 존(存)과 성(省)의 조에 관하여

  먼저  존(存)과 성(省)에 관하여 설명하면 존은 존양(存養)을 약하여 존(存)이라 표시하였고 성은 성찰(省察)을 약하여 성(省)으로 표시하였다. 존양(存養)을 다시 풀이하면  존심양성(存心養性)이 되고 성찰(省察)은 반성관찰(反省觀察)의 약어(略語)이다. 존양성찰은 유가(儒家)의 중요한 수양 방법이다. 그러면 존심(存心)이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마음을 간직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마음이 언제나 내 몸의 주체로서 항상 내 몸과 함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자는 말씀하시기를 "잡으면 있게 되고 놓아 버리면 없게 되어 나가고 들어옴에 때가 없어서 그 향하는 바를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마음이라 할 진져"(操卽存 舍卽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하셨다. 온갖 사물을 쫓아 들락날락 출입이 무상한 것이 마음의 실상이다. 마음이 나가 버린 상태의 나의 육신은 한갖 고기 덩이에 불과한 것이니 그러한 나의 육신이 건전한 윤리적 주체의 역할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나의 마음이 내 몸의 확실한 주체로서 내 몸에 간직되어 있을 때 비로소 내가 확실한 한 인간으로서 굳건히 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孟子)는 [ 학문의 길은 별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내 다르는 마음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다](學問之道  無也  求其放心而己矣)고 하였다.밖으로 내 다르는 마음을 거두어 들여 내 속에 간직해 있는 것이 존심이다. 성리학(性理學)에서는 심통성정(心統性情)이라 하여 심(心)이  성정(性情)을 통섭(統攝)한다고 한다. 즉 마음 속에 성(性)과 정(情)이 포섭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존심(存心) 즉 마음을 간직해 있어야  그 속에 있는 성(性) 즉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本性)이 길러진다고 한다. 인, 의, 예, 지의 본성이 길러지는 것 이것이 양성(養性)이다. 이 양성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존심(存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인, 의, 예, 지의 본성을 길러 생활에 실천을 하는데 그 실천이 절도에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를 반성하고 관찰하는 것이 성찰(省察)이다. 그러므로 존양과 성찰은 유가의 수양에 있어서 표리의 관계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존(存)  아래의 경이직내(敬以直內),
 성(省)  아래의 의이방외(義以方外)가 또한 대대(待對)의 관계이다.

 경이직내(敬以直內)와 의이방외(義以方外)는 [주역](周易) 문언전(文言傳)에 나오는 말이다.  경이직내(敬以直內)는  [경(敬)으로써 안(內)즉 마음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고, 의의방외(義以方外)는 [의(義)로써 밖(外)즉 행동을 방정하게 한다.]는 뜻이다. 경이직내는 내적으로 정신을 가다듬는 것이고 의이방외는 외적으로 실천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 이것도 또한 체용(體用)의 관계로 볼 수있다.
 기런데 여기서 한 가지 설명을 덧붙여야 할  것은 경(敬)의 개념에 관한 문제이다. 경이직내(敬以直內)의  경(敬)의 의미는 일반적인 윤리적인 행위로서의 공경의 의미가 아니라 극도로 순화된 순일(純一)한  정신 경계를 뜻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종래의 유가의 윤리적인 의미의 공경(恭敬)에서  철학적으로 심화된 정신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학(儒學)은 본래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지향하는 학문으로 윤리학적 성격이 강하고 형이상학(形而上學)적 성격이 약했다. 그런데 불교가 중국에 전래하여 생사문제(生死問題)를 다루고 내세문제(來世問題)를 다루어 중국 특유의 화엄철학(華嚴哲學)인 이사무애(理事無碍)의 거창한 철학체계를 형성하게 되자 이에 자극 받은 유학이 유학의 철학화(哲學化)를 통하여 불교를 극복하려  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송대(宋代)유학의 발흥이다. 송대유학(宋代儒學)은 이기철학(理氣哲學)의 이론으로 불교의 이사이론(理事理論)을 극복하였다.그러나 중국 불교에는 이론체계 외에 불입문자(不立文字) 견성성불(見性成佛) 즉 [문자를 내세우지 아니하고 바로 본성을 직시하고 성불한다.]는 이념을 내세워 정신적 수련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으려는 선종(禪宗)의 수련방식이 있었다. 송대 유교가 불교를 철저히 극복하려면 불교의 이내면적 수련방법에 대응하는 유가(儒家)의  정신적 수련방법이 강구되어야만 했다.  이에 대응(對應)된 것이 경(敬)의 사상이다. 그 경의 근거를 경이직내(敬以直內)의 경(敬)에서  구했다. 그리하여 모든 학문 활동의 정신적 근거를 경(敬)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대의 학문방법을 한마디로 거경궁리(居敬窮理)라고  할 수 있는데  먼저 경(敬)의 정신상태에 입긱해서 궁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敬)의 개념 규정에 있어서는 학자들에 따라 각기 다르나 주자는 선유(先儒)들의 경의 개념 규정 가운데 특히 4개조를 들었다.
  첫째  정이천(程伊川)의 정제엄숙(整齊嚴肅) 즉 몸과 마음을 단정하고 엄숙하게 가지는 것.
  둘째  역시 정이천(程伊川)의 주일무적(主一無適) 즉 마음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하여 딴 곳으로 흩어져  가지 않는 상태
  세째  사상채(謝上蔡)의 상성성(常惺惺) 즉 마음이 항상 별빛처럼 또렸이 깨어 있는 상태.
  네째  유정부(游定夫)의 기심수렴 불용일물 (其心收斂 不用一物) 즉 마음을 거두어드려 아무런 잡념이 없는 상태.
  주자(朱子)가 이 경(敬)의 4개조를 강조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이를 경공부(敬工夫)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많이 받들었다. 이러한 경(敬)사상의 근거를 송대 유자들은 [역](易)의 경이직내(敬以直內)에서 찾으려 하였다. 따라서 경이직내(敬以直內),  의이방외(義以方外)는 근세 유학의 수련에 있어서 절대적 원리가 된 것이다.

  경이직내(敬以直內),  의이방외(義以方外) 아래의 엄약사(儼若思)와 무불경(無不敬)이 또한 대대의 관계이다. 이 말은 [예기](禮記) 의 첫째편인 곡례(曲禮)의 첫 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엄약사(儼若思)는 선비의 태도가 깊이 사색하듯이 엄숙해야 한다는 뜻이고 무불경(無不敬)은 매사를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는 뜻이다. 엄약사는 외적 기본 자세이고 무불경은 내적 정신 자세이다.
  그런데, 이 엄약사와 무불경은 [예기] 전편의 핵심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예기]는 유교의 오경(五經) 중의 한 경전이다. 유교 문화는 한 마디로 예문화(禮文化)라고 할 수 있다. 공맹(孔孟)의 인의정신의  외적표현이 곧 예(禮)인 것이다. 그 예의 핵심 정신이  곧 엄약사(儼若思)이며 무불경(無不敬)인 것이다.
  이 존성(存省)의 항(項)은 낙천(樂天)과 안명(安命)을 추구하는 보다 실질적인 수양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세째 명경(明鏡)과 지수(止水) 조에 관하여
 
 명경(明鏡)은 밝은 거울이고 지수(止水)는 고요한 수면이다. 밝은 거울과 물결이 일지 않는 수면은 사물을 잘 비추기 마련이다.이 말은 사람의 심체(心體)를 비유한 말이 동시에 수양된 사람의 정신적인 경계를 표현한 말이다.[성인의 마음은 거울과 같다.](聖人之心如鑑)는 말이 있다. 거울이란 어떤 사물 앞에 나타나면 그대로 비추고 그 사물이 사라지게 되면 아무 것도 없는 밝은 본래의 모습의 거울이 된다.성인의 마음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즉 외물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사물에 애착을 가져 이미 지나간 사물에 대해서도 애타게 잊지 못하고 다가오지 않는 사물에 대해서도 애타게 그리워하기 마련이다.여기서의 명경(明鏡)과  지수(止水)는사물이 있는 그대로 집착함이 없이 성인(聖人)처럼 사물을 바라보고자 하는 염원(念願)을 나타낸 것이다.
  명경(明鏡) 아래 잠심이거대월상제(潛心以居對越上帝)는 주자의 경제잠(敬齊箴)에 나오는 말로서  그 뜻은 [마음을 가라 앉혀 상제를 우러르듯]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대구(對句가 되는 지수(止水)아래의 출문여빈승사여제(出門如賓承事如祭)도 역시 경제잠(敬齊箴)에 있는 말로 그 뜻은 [문을 나서면 손님처럼 의젓하고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제사를 모시듯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본래 [논어] 안연장(顔淵章)장에서 [중궁(仲弓)이 인(仁)을 물었을 때  공자가 말씀하기를 '문을 나서면 큰 손을 대하듯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하고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아니하면 나라에 있어서도 원망이 없고 가정에 있어서도 원망이 없느니라.'](仲弓問仁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라 한 것을 경제잠에 인용한 것이다.
  이 두 구절은 다 같이 주자가 경제잠(敬齊箴)에서 경(敬)의 방법으로 강조한 것이니  다 같이 경건한 마음 가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잠심이거대월상제(潛心以居對越上帝)는 정시(靜時)의 마음가짐이요 출문여빈승사여제(出門如賓承事如祭)는  동시(動時)의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안상도(案上圖)에서  이를 대비 시킨 것은 동시(動時)나 정시(靜時)를 막론하고 언제나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마음가짐을 갖고자 함을 나타낸 것이라 할 것이다.
  그 아래 야복몽매(夜卜夢寐)와 주험처자(晝驗妻子)는 경전(經典)에서 인용한 말이 아니고 신당(新堂)선생 자신이 안출(案出)하여 대비시킨 듯하다. 즉 그 뜻은 [밤에는 꿈과 잠자리에서 알아보고(夜卜夢寐), [낮에는 처자한테서 징험한다.] (晝驗妻子)는 뜻이다. 즉 밤에는 꿈속이나 잠자리에서도  거울과 같이 밝은 마음인가를 바라고 낮에는 처자를 대하는데 있어서 애증(愛憎)에 이끌림이 없이 고요한 수면(水面)과 같은 마음가짐인가를 실험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주야를 통한 생활에 있어서 일관되게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을 가질려는 바램을 나타낸 것이다.
  그 아래 심물망(心勿忘)과 물조장(勿助長)은 경공부(敬工夫)의  구체적인 방법이다. 이 말은 [맹자]공손추장구상(公孫丑章句上)호연장(浩然章)에 나오는 말이다. 즉 [반드시 일삼는 바가 있으되 (그 결과를)예기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아서 송나라 사람처럼 함이 없어라.](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  無若宋人然)가 그 출전(出典)이다. 이 말은 본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방법으로 제시된 말이다. 그러나 후세 학자들은 경(敬)공부의 방법으로 이 말을 많이 원용했다.
  맹자의 학문방법은 내적(內的) 추구이었다. 앞에서 인용했듯이 맹자는 말하기를 [학문의 길은 별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내달리는 마음을 거두어 드리는 데 있다.](學問之道  無也  求其放心而已矣)고 하였다. 앞에서 말한 필유사연(必有事焉) 즉 [반드시 일삼는바 ]라는 것이 다름 아닌 구기방심(求其放心) 즉 밖으로 내달리는 마음을 거두어 드리는 것이다.마음을 거두어 드리되 그 결과의 효과를 예상한다든가 바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를 바라는 마음은 이미 욕심이고 마음의 순수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 생각없이  그저 마음을 거두어드리기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곧 심물망(心勿忘)이다.  마음 모우기를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음을 모우되 그 마음을 흩으리지 않으려고 억지로 힘을 써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물조장(勿助長) 즉 억지로 힘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억지로 힘을 쓰게 되면 마음 모으기는 커녕 도리어 해를 가져온다.하고 어떤 어리석은 송나라사람의  예를 들었다. 즉 송나라의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 모가 잘 자라지 않는 것을 답답하게 여긴 나머지 모를 길게 뽑아 올렸더니 모가 그만 시들러버렸다는 고사를 인용했다. 마음 모우는 공부도 이와 같이 무리하게 억지로 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심물망(心勿忘)과  물조장(勿助長)은 맹자의 마음 모우는 공부에 있어서 구체적인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후대에 경(敬)공부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많이 강조 되었는데 안상도(案上圖)에서 극명하게 드러낸 것은 의미가 깊다고 할 것이다.


  네째 아홉가지 모습(九容)과 아홉가지 생각(九思)에 관하여
 
  도(圖)에서는 용(容)자와 사(思)자를 크게 쓰고 그 아래 위로 아홉 글자씩을 느려 놓았는데 그것은  곧 구용(九容)과 구사(九思)를 도표화(圖表化)한 것이다.
  구용(九容)은 [예기] 옥조(玉藻)편에 나오는 말로서 이 도표를 풀어서 그 원문과 뜻을 기록하면  다음과 같다.

         족용중(足容重)       발가짐은 무거워야 하며
         수용공(手容恭)       손가짐은 공손해야 하며
         목용단(目容端)       눈가짐은 단정해야 하며
         구용지(口容止)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아니되고
         성용정(聲容靜)       목소리는 조용해야 하고
         두용직(頭容直)       머리는 반듯하게 가져야 하고
         기용숙(氣容肅)       기상은 엄숙하게 가져야 하고
         입용덕(立容德)       선 모습은 덕성스러워야 하고
         색용장(色容莊)       얼굴표정은 장엄해야 한다.
 
  구사(九思)는 [논어] 계씨(季氏)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이다. 그 원문과 뜻을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시사명(視思明)       보는데 있어서는 분명하고자 하고
         청사총(聽思聰0       듣는데 있어서는 똑똑하고자 하고
         색사온(色思溫)       표정은 온화하고자 하고
         모사공(貌思恭)       태도는 공손하고자 하고
         언사충(言思忠)       말은 충직하고자 하고
         사사경(事思敬)       일은 공경스레 하고자 하고
         의사문(疑思問)       의문이 있을 때는 묻고자 하고
         분사난(忿思難)       분이 날 때는 뒷 끝이 어려울 것을 생각하고
         득사의(得思義)       이득이 있을 때는 의를 생각한다. 

     구용(九容)과 구사(九思)는 다 같이 처신(處身)의 원리라고 할 수 있으나 엄밀히 구분한다면 구용은 단순히 내 자신의 바른 몸가짐의 원리이고 구사는 사물을 대함에 있어서 가져야 할 바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즉 처신을 바르게 하고 처사(處事)를 바르게 하려고 하는 의도이다. 따라서 구용이 체(體)라고 한다면 구사는 용(用)이 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안상도(案上圖)는 여기까지가 수도(修道)의 기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태(怠)와 욕(慾), 동심(動心)과 인성(忍性) 조에 관하여

 위 넷째 조까지는 수도(修道)의 기본 구조라고 밝히고 여기서는 위의 수도를 게을리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가를 밝히고 그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밝히고  그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밝히고 있다.
  태(怠)와 욕(慾)이 대대구조인데 태(怠)는 [게으를 태]자로서 위의 수도를 게을리 한다는 뜻이다. 욕(慾)은  위의 정당한 수도의 태도와는 다른 허욕(虛慾)을 뜻한다. 태(怠)와 욕(慾)은 건전한 수행을 저해하는 절대적인 금물이다. 이 그림에 있어서 이 두 가지는 경계의 조항으로 제시 한 듯하다.
   그 아래 동심(動心)과 인성(忍性)이란 말은 [맹자] 고자장하(告子章下)의 글에서 인용한 표현이다. 그 원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 심지(心志0를 괴롭게 하고 그 근골(筋骨)을 수고롭게 하고  그 체부(體膚)를 굶주리게 하고 그 몸을 공핍(空乏)케 하여 행함에 있어서 그가 하는 바를 흩뜨리고 어지럽게 하나니  그 까닭은  마음을 격동시키고 성질을 참도록 하여 그가 능하지 못한 바에 보탬이 되게 하는 것이다.
  (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若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

 이 동심인성(動心忍性)을 주자(朱子)는 주석하기를 [ 그마음을 크게 움직이게 하고 그 성품을 굳게 참는 것을 말한다.](謂竦動其心  竪忍其性也)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동신인성(動心忍性)은 게으름(怠)이 생길 때는 크게 마음을 격동하여 그 게으름을 떨치도록 하고 욕심(慾)이 생길 때에는 성품을 굳게 참아서 욕심을 이겨 내고자 함이다.
  범범유유도불제사( 泛泛悠悠都不濟事)는 [어정어정 태평스레 지내면 아무런 일도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에 대구(對句)가 되는  면면순순자유소지(勉勉循循自有所至)는 [노력하고  노력해서 법도를 따르게 되면 저절로 목적한 바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앞에서 잠간 언급했듯이 이 부분은 안상도(案上圖)의 말단 부분으로서 앞에서 실천을 강조한 규범을 게을리 하면 온갖 욕심이 생겨나니  그럴 때는 크게 마음을 가다듬고 인내해야 함을 가르치고 결론적으로 어정어정세월을 보내면 아무 일도 되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노력하면 기필코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상이 안상도(案上圖)의 내용이다. 위의 해명에서 알 수 있듯이 안상도는 유학의 여러 경전 가운데서 유학이 추구하는 핵심 이념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그 이념들을 유기적으로 조직화하고  그 사상체계를 실생활에 있어서 어떻게 체현할 수 있는가의  방법까지를 소상하게 명시하여 하나의 통일 된 사상체계를 갖춘 도(圖)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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